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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36 - 연산의 복수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5.05
번호 | 605
조회 | 234
조선왕조 36 - <연산의 복수>

술 몇 방울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이세좌를 파직한 연산은 며칠 후 조정 중신들을 모아 놓고
“내가 이세좌를 파직한 것은 대간들이 반드시 벌을 청할 것으로 알고 그런 것인데,
아무도 벌을 청하지 않으니, 이는 이세좌의 힘이 두렵기 때문이냐”라며 불호령을 내렸고,
이에 화들짝 놀란 대신들이 이세좌에게 벌을 주기를 청하자
연산은 이세좌를 유배하고 그 아들들을 파직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연산은 두 달 만에 이세좌를 불러들였고 대궐로 불러 친히 술을 따라 주기까지 하였다.
대신들은 연산이 용서한 것으로 알고 기뻐하며 돌아온 이세좌의 집으로 몰려가 축하를 해 주었다.

그때, 중전을 간택하는 간택령이 내려졌는데,
경기관찰사 홍귀달이 손녀딸에게 내려진 입궐령을 손녀딸이 병중이라며 불응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연산은 홍귀달의 행위는 신하들이 작당, 붕당 하여 왕을 업신여기는 데서 나온 것이고,
전일 이세좌를 엄한 벌로 다스리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서 홍귀달과 이세좌를 유배시키고,
이어서, 전일에 이세좌의 죄를 논할 때 엄벌하라 청하지 않은 신하들과
이세좌의 집을 찾아 축하를 한 신하들을 국문하는 등 믿기 어려운 조치를 쏟아 내었다.

조정의 중신들은 이 일로 인해 엄청난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이는 이세좌가 바로 폐비 윤 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연산이 별것도 아닌 일을 이유로 몇 차례에 걸쳐 이세좌를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어미 윤씨의 복수를 하려는 전조로 볼 수 있고,
연산은 이세좌 처벌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준비한 복수를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연산은 이세좌의 아들, 아우, 사위들까지 장을 쳐서 유배 조치한 날 저녁,
그러니까 갑자년(1504년) 3월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성종의 후궁인 엄숙의와 정소용을 불러 내
이들이 참소하여 어미가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직접 몽둥이로 후궁들을 마구 때려 혼절 시켰다.
이어서 연산은 이 여인들의 아들이자 이복동생 둘을 불러 몽둥이로 이들을 치도록 하였고,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는 아들 하나는 몽둥이로 어미를 쳤으며,
눈치를 챈 어느 아들은 끝내 몽둥이를 들지 못하였고,
결국 그날 밤 자신의 모친 격인 성종의 후궁 둘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연산은 이날 밤 아버지인 성종의 후궁 둘을 때려죽인 뒤,
장검을 빼어 들고 연산의 할머니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의 숙소에까지 난입하여
“왜 어머니를 죽였냐"라며 할머니를 가혹하게 윽박질렀다.

이 일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인수대비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이렇게 막이 오르고 있었다.

<甲子士禍>
연산군일기에서는 갑자사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고,
드라마에서도 이와 같이 그리고 있다.
- 어느 날 밤 임사홍의 집에 미복 차림으로 찾아온 연산에게 임사홍이 울면서
“모후께선 투기한 죄밖에 없사온데 엄숙의와 정소용이 참소(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일)하여 폐비와 사사에 이르렀나이다”라고 하자,
폐비를 닮아 모질고 어리석은 연산이 그날 밤 엄숙의와 정소용을 손수 죽였다.

그러나 임사홍의 집에 사관이 동석했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시점상으로도 연산이 어미의 죽음이 참소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한 때는 이보다 훨씬 앞선 때이므로,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연산은 엄숙의와 정소용을 손수 때려죽인 후
“칠거지악이 있다 한들 그런 일이라면 버리면 그만이지 꼭 죽여야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아비인 성종의 뜻에 반해 폐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폐비를 사사할 때 사약을 들고 갔던 이세좌, 윤필상을 참하고,
죽어 묻혀있는 한명회, 정창손, 정인지 등을 부관참시하였으며,
특히 한명회와 정창손은 이미 해골이 된 머리를 효수되기도 하였다.

연산은 그 외 어미의 죽음과 연관된 사람을 몇 더 죽이고 유배 보냈는데,
단지 어미의 복수라면 이쯤에서 마무리되었을 것이나
연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피바람을 뜻밖의 방향으로 확대시켰다.

연산은 연산 아래에서 영의정까지 지내고 죽은 인수대비의 4촌 오라비 한치형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부관능지 <시신을 꺼내 머리, 팔, 다리를 모두 자름> 하고,
가산은 모두 몰수하였으며, 자식들을 국문장으로 끌고 나와 죽기 직전까지 괴롭혔다.

무오사화에서 갑자사화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세 정승은 한치형, 이극균, 성준이었는데,
연산은 한치형에 이어, 이극균, 성준을 모두 죽이고도 모자라,
그 후 이들을 능지하여 팔도에 돌리는 한편,
머리는 따로 떼어 백관 앞에 효수하였다가 다시 이를 팔도에 돌리도록 하였다고
다시 해골을 빻아서 바람에 날려버리게까지 하는 등 사람의 길을 벗어난 폭정을 이어갔다.

이어서 이들의 집이 있던 자리는 파서 연못으로 만들고,
귀양에 그쳤던 부모, 형제, 자식, 사위들도 모두 참수하고,
과거 연산 즉위 후 입바른 상소를 올렸던 대간 등 연산에게 싫은 소리를 했던 대간들을 찾아 내
과거의 일을 이유로 모조리 참수하여 효수하였다.

이즈음 감옥이 모자라 잡아 온 이들을 바깥에 둘 수밖에 없었고,
고문으로 인한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며, 날마다 새 얼굴이 장대에 꽂혀 걸리었으며,
대신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전하 지당하신 분부이시옵니다”라는 말밖에 없었다고 한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