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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34 - 사화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4.22
번호 | 603
조회 | 226

조선왕조 34 - <戊午士禍의 시작>

사화(士禍)는 조선시대에 조정 중신과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禍)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국사 시간에 졸았던 학생들은 죽을 사(死)로 많이 알고 있는데
사화는 선비 사(士)이다

* 숙종 때의 선비끼리 싸움(남인, 서인 그리고 소론, 노론 등)을 "환국"이라도 한다.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조선 개국 이래 세종 성종 등 임금이 문치(文治)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선비들 사회, 즉 유림(儒林)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세조, 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주의, 사상, 향토 관계 등으로 파벌이 생겼는데,
이를 크게 대별하면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이다

조선시대는 언제 어디서나 티격태격, 파벌, 붕당 하는 게 거의 병적이었다.
지금의 학연, 지연, 보수 진보의 다툼과 유사하지만.......

훈구파는
세조의 정난을 도와 높은 지위와 많은 땅을 소유한 일파로서 정인지, 신숙주, 이극돈 등이
그 일파이고,

사림파는
경상도 출신의 대학자 김종직을 필두로, 그 제자인 정여창, 김일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파로서,
세조의 정난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기회가 오면 정부 요직에 들어가 포부를 펴보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훈구파와 사림파는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훈구파와 사림파가 1차로 맞붙어 사림파의 선비가 무수히 죽는 사건이 일어나니
이것이 바로 연산군 4년 무오년(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이다.

연산군 시대에는 연산군이 폐비 윤 씨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2차 사화가 또다시 6년 뒤 1504년에 발생하는데 이것이 갑자사화이다.

이와 같은 무오사화, 갑자사화와 더불어
후대의 기묘사화(중종 14년), 을사사화(명종 즉위년)를 합쳐 4대 사화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정쟁은
크게 보아 훈구파와 사림파가 끝없이 대를 이어서도 대립하고 분파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슬람의 수니와 씨아가 지금까지 1,500년 동안 싸우있다

우리 역사와 현재의 정쟁과도 유사한 것인지?

연산군 시대의 1차 사화인 무오사화를 간결하게 살펴보면,
실록을 편찬하는 이극돈(훈구파 실록 청의 수장)은 사초,
즉 사관들이 비밀리에 작성하는 실록 편찬의 기초자료를 살피던 중
자신에 대한 민망한 기록(불경을 달달 잘 외운 덕에 전라 관찰사가 되었다는 등)을 발견하고,
이를 작성한 사관인 김일손(사림파)에게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김일손은 이를 거절하였다.

무오사화의 불씨는 이것으로 시작이 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극돈은 김일손이 쓴 사초에서
다른 문제의 기사를 찾아 볼 요량으로 사초를 자세히 보다가,
“김종서, 황보인 등은 절개를 지키려다 죽었다"라는 등
세조 집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내용과
“세조는 아들인 의경세자의 후궁 권 씨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을 했으나
권씨가 세조의 부름을 응하지 않았다”는 등
세조를 비하하는 경천동지할 기록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사관 이극돈과 김일손이 서로 다투는 바람에,
이 사실은 보고받은 연산은 관련자들을 처벌하여 피바람이 일어나고 만다.

사화를 입은 대상은
실록 편찬과 관련된 사람 8명, 언관 9명, 대신 및 종친 11명, 김종직과 관련된 사람 24명.

사화와 관련된 형량은
사형 6명, 유배 31명, 파직 및 좌천 15명이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