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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31 - 예종의 죽음, 성종의 등극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2.07
번호 | 570
조회 | 41
조선왕조 31 - 예종의 죽음, 성종의 등극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세자가 되었고,
5년여의 세자 생활을 거친 후 등극하였다.
당시 조선은 한명회 등 공신들이 정사를 농단하는 공신의 시대였는데,
온건한 성품의 예종은 등극하자 의외로 강하게 공신들을 압박하였다.

예종은 즉위 후
“권세가의 집에 드나드는 자가 있으면 공신을 불문하고 칼을 씌워 잡아와라”,
“탐오 불법이 있다면 공신, 당상관(요즈음으로 치면 장관)을 가리지 말고 구금하고,
고문을 해서라도 진상을 밝혀라"라는 명을 내리는 등 공신들을 장악하는 한편,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을 천명하였다.
아울러 몇 년 안에 기어코 부왕인 세조를 능가하는 강력한 군주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예종은 실제 그럴만한 재주와 배짱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종의 이러한 꿈도 채 봉우리를 피워볼 수도 없었다.
이는 예종이 그전부터 앓고 있던 족질이 원인이었고,
예종이 앓던 족질은 무좀이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볼 수 있었다.

조선 8대 왕인 예종은 왕성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족질로 급격히 기력을 잃고 졸하니,
재위 1년 2월, 20세의 나이에.
한편, 예종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겨우 족질로 젊은 청년이 그리 쉽게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 개운치 않다.

이는 공신 세력에 대해 강경 정책을 펼친 예종의 카리스마에
불안감을 느낀 한명회 등 공신 세력과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의경세자의 부인이 독살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한명회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지만, 물증이 없다.

암튼, 예종이 죽은 후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3명의 대상자가 있었다.
먼저, 죽은 예종의 아들인 원자(제안군)인데 나이가 겨우 4살에 불과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다음으로,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가 남긴 아들 중 첫째인 월산군과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었다.

자을산군은 후계 서열로는 3위이지만 결국 이 아이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이 아이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자을산군의 어미가 진즉에 한명회의 4녀를 며느리로 들인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또한, 후계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대왕대비(세조의 부인)도 실질적 권세가인 한명회가
새 임금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길이라 믿었을 것이다.
이씨조선이 아니라, 한 씨의 조선되었다.

열세 살에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선 8대 임금 성종은
세종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임금 다운 임금이었다.

성종은 할머니의 수렴청정을 거친 후에도
인수대비의 간섭, 한명회 등 공신들의 득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시간은 나의 편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가다듬기에 힘쓰니,
한명회를 비롯한 공신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건 자연의 이치인지라,
자연스레 성종의 치세가 열릴 수 있었다.

성종 치세에는 이렇다 할 외침이나 역모도 없는 가운데 수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으나,
성종에게도 다른 선대 왕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불행이 닥쳐왔으니,
이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폐비 윤 씨, 그리고 연산군으로 이어지는 잔혹사였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