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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30 세조와 예종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1.28
번호 | 568
조회 | 73
조선왕조 30 - * 세조와 예종

한명회는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1녀를 당시 한명회와 더불어 세조의 최고 측근인 신숙주의 장남에게 시집을 보냈다.
최고의 정난공신이 사돈으로 뭉친 것이다

한명회는 이어서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냈다.
그리고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세자가 된 지 2년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아들을 제치고 세자가 되는데,
이는 해양대군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남편인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중전이 되어 보지 못한 채 대궐에서 밀려난
의경세자의 부인(나중에 인수대비)은 세자가 된 시동생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간파하고,
시동생인 해양대군이 죽게 되면 그 후임으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울 요량으로
(아니면 시동생을 죽여서라도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조에게 빌다시피 하여 한명회의 4녀를 자신의 둘째 아들 잘산군의 며느리로 맞아들였고,
결국 소원대로 자을산군은 예종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정리하면,
한명회는 1녀를 신숙주에게,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4녀를 세조의 첫째 아들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고,
3녀는 남편인 해양대군이 왕(예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으며,
4녀는 남편인 자을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왕(성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참고로, 한명회는 말년에 한강 가에 정자를 멋들어지게 지어 놓고 유유자적하였는데,
그 정자의 이름이 '압구정'이었고,
여기에서 오늘날의 압구정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이와 같이 칠삭둥이 한명회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것이었고,
죽기까지 영화를 누렸지만 계유정난 이후 곧 동생이 죽고,
왕가에 시집 간 딸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죽었으며,
본인도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니,
역사가 공평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무튼 세조 이후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세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병에 몹시도 시달리다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해양대군(예종)이 즉위한 다음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뜨니
재위 13년 3개월, 향년 52세에 불과하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상당한 치적을 쌓기도 했으나,
그 자식들이 모두 20세에 죽었고,
한명회의 여식이기도 한 며느리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요절하였으니,
세조와 한명회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복수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계속 .....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