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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29 . 세조와 한명회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1.16
번호 | 565
조회 | 89
조선왕조실록 29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거머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참 많이도 죽였고,
그 살육의 행진은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서야 마무리되었다.

세조의 이러한 무력 질주에 대부분의 계책을 낸 사람은 한명회였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을 통해 무력으로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후대의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기본 방정식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그러했다.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 공신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 데다
한명회의 전략 구사 등 개인기가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張良)을 말한다.
장량의 자가 자방(子房) 이어서 장자방이라고 많이 부른다) 못지않으므로
이들을 함부로 거세하려다가는 세조의 처지가 오히려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이 살맛 나는 공신의 세상이었다.
이 당시 홍윤성 등 공신들의 전횡과 횡포가 극에 달해 백성의 원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으나,
세조는 대부분 이를 눈 감아 주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조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잘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나이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 (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다.
예종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는 설이 난무하다 (독살설 등).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제안대군 4살)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다.
첫째 아들 월산군은 병약해서 제외되었고, 결국 요절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여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세조와 한명회는 예종(죽음 등)과 성종의 등극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