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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27 - 야사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20.01.02
번호 | 563
조회 | 276

조선왕조 27 -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시도는 한명회의 귀신같은 예감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성삼문 등은 김질의 고변으로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성삼문 등을 우대했던 세조는 배신감에 그분을 못 이겨 성삼문 등을 더욱 혹독하게 고문하였으나,
성삼문 등은 끝내 그 기개를 꺾지 않았다고 한다.

야사에서 전하는 장면을 조금만 소개하면,
- 성삼문은 세조를 “나으리”라 칭하고 나라를 도둑질했다면서 세조를 꾸짖었고,
격분한 세조가 “그러면서 왜 나의 녹을 먹었느냐”라고 하자,
"나리가 준 녹은 창고에 손도 안 대고 쌓아놓았다”라고 답했으며, 사실이 그러했다.
성삼문은 세조가 나으리라는 말을 거두라며 형리로 하여금 시뻘건 인두로 몸을 마구 지지게 하자
"나리의 고문은 참으로 가혹하오"라는 말을 남겼다.

- 박팽년은 세조가 “너는 내게 신(臣)이라 칭하며 장계를 올렸던 것을 잊었느냐”라고 하는 말에
대해, “나는 신(臣)이라 칭한 적이 없다”라고 하여, 확인해 보니
“신(臣)”이 아니라 “거(巨)”라 되어 있었다.

- 성삼문 등은 국문 담당 신숙주에게
“세종께서 어린 상왕을 안고 우리에게 이 아이를 잘 보살펴달라는 당부를 한 것을 잊었느냐”
라면서 오히려 신숙주를 문책하였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우리는 사육신이라 부르는데
(효은이 명명한 것임),

이들은 집에서 자결하거나 고문으로 죽거나 혹은 능지처사되었고,
모두 3일간 효수되었으며, 그 가문은 사실상 멸문의 화를 입었다.
한편 고발자인 정창손, 김질은 세조의 총애를 받아 영의정, 좌의정까지 올랐다.
어디 가나 이런 인간들은 꼭 있는 법.
위 사람들이 이즈음 지었다는 시가 많이 전래되는데,
그 중 성삼문이 형장에 끌려가며 읊었다는 시가 가장 가슴을 울린다.

둥둥둥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고
뒤돌아보니 해는 벌써 저물고 있구나
황천길엔 주막도 하나 없을 텐데
오늘 밤에는 누구 집에서 잘꼬.

세조는 이어서 국왕 살해 기도 사건의 책임을 물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영월로 유배를 보내버렸으며,
자신의 친동생인 금성대군과 단종의 장인을 역모를 이유로 모두 죽여버렸다.

단종은 부인과도 헤어진 채 홀로 영월로 끌려갔다가 그 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노산군은 금성대군과 장인 송현수의 죽음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이는 사실일까?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