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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20 - 비극의 서막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2.07
번호 | 556
조회 | 188
조선왕조 20.

* 비극의 서막

세종의 장자 '향'이 세자에 책봉된 것은 8세 때였다.
후일 문종 이 되는 세자는 아버지의 성품과 자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야말로 聖君 중의 성군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문종은 세자로만 30년을 지내면서 부왕인 세종으로부터 최고의 왕위 수업을 받았으나,
즉위 2년 3개월 만에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으니, 비극의 서막이 시작된다.

보통 사람들은 문종이 일찍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문종이 사망한 것은 39세로 성종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아마도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았던 데다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에
그러한 말들이 횡횡한 것이다.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번 이혼하였는데
(두 번째 세자빈의 폐출 사유는 세자빈이 동성연애를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세 번째 부인으로부터는 아들을 하나를 얻었는데 산모는 출산 후, 바로 세상을 떴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견인 어미를 잃었으니
어린 단종의 앞날이 참으로 가엽기만 하였다.

세종은 과로와 운동부족에(모든 왕 들의 공통점)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소갈증(당뇨)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말년에는 문종에게 섭정을 시키고 뒷방으로 물러나 앉아있었다고 전한다.

세종은 부인 6명에 18남 4녀를 두었는데,(일설에는 27 명이라는 설도 있음.)
정비인 중전 심 씨가 낳은 아들은 8 명이었다.
장자인 문종 밑으로 세 살, 네 살, 다섯 살 等의 터울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모두 총명하고 제주가 있었으나,
오히려 이것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과 달리 형제간의 우애를 매우 중시하여
자식들에게 일찍부터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겼고,
나아가 자신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시키기까지 하였다.

세종 입장에서 보면, 장성한 잘 준비된 세자가 있고,
세손이 잘 크고 있으며,
대군들도 아비와 형님의 말을 잘 듣고 있으니
자신의 病 치례 말고는 걱정거리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다섯째와 일곱째 아들과 부인마저 세상을 떴고,
거기에 세자마저 등에 난 종기가 갈수록 커져 위험한 지경에 이르다 보니,
세종의 걱정이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자식들과 부인의 죽음,
세자의 병 걱정으로 자신의 병세도 급격히 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다.
이때, 대왕의 보령이 향년 54세였고 재위 기간은 31년이었다.

세종은 눈을 감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양, 안평.. 이들이 설마! 했을까?
세종 대왕은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난 것은 역사가 될 뿐임을 알고 있었을까?

그러한 역사의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
대왕은 현재 경기도 여주 땅 영릉에 잠들어계신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