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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19 - 세종대왕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2.03
번호 | 555
조회 | 127

조선왕조 19. - 세종대왕

* 한글 창제와 세종의 카리스마

태상왕 태종이 세상을 뜨고 나서야 세종은 임금 다운 임금이 되었다.
태종이 죽자 신하들은 은근히 세종을 길들이고자 하였으나
세종은 이를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등 특유의 외유내강의 카리스마로
새로운 제왕상을 쌓아가기 시작하였다.

세종은 중전 심 씨 가문을 초토화시킨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방법으로
신하 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있었으나 끝까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형인 양녕대군에 대해서도 끝까지 후대하였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과 형인 양녕대군 덕분에 보위에 올랐지만
골치 아픈 정치투쟁에서 벗어나 농업과 천문, 기상, 과학, 외국어, 악기, 북방 문제 등,
모든 분야를 혁신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므로 생략하고
반만년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진실로 위대한 한글 창제에 대해서만 살펴보면

1443년 12월 30일,
세종은 그의 인생에 있어 청사에 길이 빛날 최고의 걸작품인 훈민정음,
즉 우리글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기이하게도 그 이전의 실록에는 한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동안 한글은 세종의 주관하에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있었는데
실록에는 집현전이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거나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 그 어디에도 없다.

한글이 공포된 지 한 달 보름이 지난 후 최만리의 상소가 올라왔는데, 그 내용은
'한글은 새롭고 기이한 기예일 뿐 한자 외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事大에 어긋나고 오랑캐와 다를 것이 없다'라는 취지었다.

그것은 최만리가 집현전의 실질적인 수장이었음으로,
만약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면
최만리가 이러한 전모를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중국과의 관계)이
세종이 공개적으로 한글 창제를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한글 창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문헌이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한글 창제는 세종이 극 소수의 믿을 수 있는 학자들과
극비리에 추진한 프로젝트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극비 프로젝트*
朴正熙 大統領 때,
우리나라가 극비리에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원자핵물리학자인 故 이휘소 박사를 설득하여 모셔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불과 귀국 7일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사건이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김진명 著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시길..)

어쨌거나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
만든 이유가 자료에 의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는 유일한 문자이고,
한글의 기막힌 과학성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인정하고 알려진 것으로,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당당히 올라 있다.

또한 한글의 그 물리적 위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정신,
즉 통치자가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까막눈의 일반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5 ~ 6 세만 되어도 한글 전체를 깨우칠 수 있을 정도로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며,
대왕의 철학(愛民 정신)이 담겨있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문자 한글!
대왕께서 이러한 한글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나라의 어떤 문자를 쓰고 있었을까?
다시 한 번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