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내용

제목 조선왕조 16 -양령과 충령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1.19
번호 | 552
조회 | 80
조선왕조16

* 양녕과 충령

태종은 정비 민씨와의 사이에서 양녕, 효령, 충녕, 성령 이렇게 4명의 아들을 두었다.
태종이 처가인 중전 민씨 일가를 멸문지화 시키고 수많은 공신들을 제거한 이유는
오직 미래의 군주가 될 세자 양녕대군 때문이었는데,
끼가 많은 양녕의 탈선이 문제가 된다.

양녕은 어린 시절부터 딱딱하고 엄격한 왕제 교육을 따라가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으며,
열일곱 살 때부터 여색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태종은 일찍이 세자의 버릇을 고쳐놓고자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양녕은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을 넘어 宮 밖의 건달들까지 闕(궐) 안으로 불러들여 노는 등,
탈선의 행태가 점점 심해졌다.

(野史)
(양녕의 이러한 탈선이 아버지의 무자비한 숙청을 보고 이에 대한 반발심과 거부감,
나아가 보위에 대한 환멸이라고도 하고,
왕의 마음이 충녕에 있음을 알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는 설,
또한 王材로서 아우 충녕이 뛰어남을 알고 그리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양녕은 방랑끼와 바람끼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장차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데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태종의 관심을 받았다.
같은 왕자라 하더라도 세자와 왕자의 지위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니,
세자는 보위에 올라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나 왕자는 그냥 종친에 불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의 아니게 역모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신분이었다.
따라서 왕자로서의 충녕의 뛰어난 자질은
어디에도 사용할 곳이 없는 쓸데없으나 아까운 것이었다.

실록에는 충녕이
세자 양녕에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정도의 행위를 여러 번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 충녕이 양녕의 탈선을 보고 왕위를 욕심냈다거나
충녕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사관들의 아부성 加筆이었다는 등의 해석들 있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역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세자 양녕은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태종에게
“소자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아버지는 무엇을 잘하셨다고 저를 그렇게 나무라십니까?”
라는 취지의 편지가 결정적 사유가 되어 세자의 자리에 오른 지 14년,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폐위되고, 충녕이 세자가 된다.

충녕대군은 세자가 된지 두어 달 남짓 지나 태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니,
이 분이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이다.

우리 역사상 공식적으로 '대왕'으로 추앙받는 분은 오로지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
(공식 명칭 :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두 분뿐 임을 독자 제위께서 익히 알고있음과 같다.

흔히 사극이나 특정 임금에 관한 역사서에 나오는 대왕 칭호
(영조, 정조, 성종 선조 等,)는 그저 붙여준 칭호일 뿐이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공인노무사 신재길. 054 977-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