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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12 - 明나라와 갈등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1.07
번호 | 547
조회 | 52
조선왕조 12.

* 明나라와 갈등(葛藤)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이 서서히 표면화되어 가고 있을 때,
명나라와의 갈등이 조선의 정국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게 된다.
명나라 주원장은 장자인 황태자의 앞날을 위해 10여 년 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최고 공신을 비롯해 무려 1만 명이 넘는 공신을 도륙하는 대학살을 자행했으나,
그 일이 일어난 얼마 후 황태자가 죽어버렸는데..
주원장은 이번엔 손자를 위해 다시 대숙청을 단행하여 이때도 죽은 사람이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후, 주원장은 조선에 대해 위협과 트집 잡기를 거듭하고,
조선의 사신을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여 내쫓아내는 등, 도를 넘게 괴롭히다,
급기야는 조선의 왕자를 입주시켜 현안을 해명하라는 요구를 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이성계는 부득이 이방원을 명나라에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아들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웬일인지 주원장은, 이방원을 환대하고 최상의 대우를 해 주었고,
무사히 돌아온 이방원은, 현실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런데, 주원장이 이방원에게 이와 같은 환대를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정도전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나라 주원장은 다시 조선이 보낸 표전문의 문구를 빌미로
조선의 갖은 정성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의 입조를 강력히 요구하자,
이성계와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그런데 왜 주원장은 정도전을 왜 죽이려 했으며
조선은 군사력에서 상대도 안 되는 명나라의 요동을 치려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 明 나라 주원장에 대하여 -
소년 시절 주원장은 하루 밥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승려가 되기로 하고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가지만, 절이라고 음식이 충분할 리 없었다.
두 달 만에 그는 탁발승이 되어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데,
사실상의 거지 생활을 4년이나 더 하게 된다.
하지만 亂世란 특별한 사람에게 절망과 함께 희망도 준다
1351년에 백련 교도를 주축으로 한‘홍건적'이 봉기하고, 양자강 일대가 이들의 세력권이 되자,
“망할 놈의 이 세상, 한 번 뒤집어 보자"라는 민중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을 때..
주원장도 이 시류에 따라 안휘성에서 봉기한 홍건적 곽자흥의 수하로 들어간다.
이후 별 볼 일 없는 줄만 알았던 주원장의 숨은 재능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몇 년이 안 되어 곽자흥 군의 2인자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는 곽자흥의 양녀인 馬씨란 처녀와 혼인도 치렀는데,
그녀는 후일 지혜롭기로 유명한 마황후로서 주원장의 정치에 많은 도움을 준다.

주원장은 곽자흥이 죽은 후 그 아들을 명목상 주군으로 받들며 실질적인 대장 노릇을 했고,
송나라 황실의 후예를 자처하며 제일 먼저 봉기했던 홍건적 두목 한산동의 아들인 한림아가
小明王이라는 이름으로 송(宋)을 세우자 이를 인정하여 부원수의 직함을 받게 된다.
어차피 정통성도 실권도 불분명한 나라였을지만 일정한 권위와 대의명분은 확보한 셈이다.

차제에 더욱 세력을 키운 주원장은 1356년,
집경(후의 남경)을 점령하고 그곳을 ‘응천부'로 개명하고 본거지로 삼는다.
이로써 주원장은 당시 홍건적 군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3대 세력(장사성, 진우량, 주원장)의 하나로 발돋움한다.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 054-977-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