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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10 - 고려 마지막 왕(이성계)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1.03
번호 | 545
조회 | 86
조선왕조 10. 태조-1

이성계는 정도전과 의기투합한 지 10여 년 만에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이성계는 즉위한 후 명나라 주원장이 낙점한 조선이라는 국호로 새나라를 출범시키고,
(1. 조선 2. 화령 중 하나를 정해달라고 한 것에 대하여 주원장이 "조선"을 낙점함)
이숭인 등 정몽주의 측근 8명의 학자를 곤장으로 쳐 죽이는 등
반혁명 세력의 핵심 분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함과 아울러
공이 있는 자들을 개국공신으로 임명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공이 누구 못지않게 큰 이방원 등 그 아들들을 하나도 공신으로 선정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세자 책봉 문제와 더불어 훗날 벌어질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이성계는 부인이 둘 있었는데,
첫째 부인(신의왕후 한씨)은 6남 2녀를 남긴 후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둘째 부인(신덕왕후 강씨)은 2남 1녀를 낳고, 조선의 중전이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이 된 후 자연스럽게 세자를 책봉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장자인 이방우가 세자가 되지 못하므로(이방우는 한량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이 크고 왕제를 갖춘 이방원이 세자가 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예상을 뒤엎고 둘째 부인인 중전의 막내아들 방석이 세자로 선정되었다.

이는 중전의 욕심, 정몽주를 쳐 죽인 이방원을 꺼린 이성계,
재상주의를 실현하려는 정도전 등의 이해가 합치된 결과였고,
이성계는 이방원의 반발 정도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충분히 제압 가능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몽주를 쳐죽이는 광기를 보고도 그 집요함과 과감함을 간과한 것으로,
이러한 세자 책봉은 결국 훗날의 2차례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의 빌미가 되고 만다.

이성계도 여자의 치맛바람에 헐떡거려, 아들 8명 중에 어린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니,
어쩌면 作法自斃(작법자폐) 아닐는지?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 977-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