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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9 - 이성계와 이방원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1.01
번호 | 544
조회 | 60

조선왕조 9.

이성계파와 정몽주파의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던 와중에
이성계가 사냥 중 말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정몽주는 이를 하늘이 준 기회로 보고, 정도전, 남은 등을 구속하고 참수 직전까지 몰게 되었으며,
한 번 빈틈이 보이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정몽주의 공세에
난공불락이던 이성계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성계에겐 또 하나의 날개, 다섯째 아들 25세의 젊은 피 이방원이 있었다.
이방원은 일반적인 무인의 아들과 달리 문과 과거에 합격한 문인에 속하면서도,
명분에 발이 묶인 다른 문인들과는 존재의 차원을 달리하는 담대한 인물이었다.

이방원은 “필요하면 먼저 행하고, 명분은 그 후에 만드는 것이다”라는 과단성을 갖춘 자로,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등이 이방원의 이런 성격을 과소평가한 것이
바로 이들 3인이 겪게 되는 엄청난 불행의 원천이 되었다.

젊은 피 이방원은 몸져누운 이성계를 개경까지 데리고 와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정도전 등의 참수를 일시 정지시키는 한편,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정몽주를 제거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한편, 정몽주는 이방원의 이런 계책도 모른 채
누워 있는 이성계를 문병한다는 명분으로 이성계를 찾아왔으니,
이는 이성계가 무리수를 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겠으나,
그 아들인 이방원의 됨됨이를 간과한 대실수였다.

이방원은 이성계를 문병하고 돌아가던 당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정몽주를
선죽교 위에서 수하를 시켜 보란 듯이 척살을 해버리니 이때 정몽주의 나이 56세였다.
이방원은 이일을 계기로 이성계의 눈 밖에 나게 되었으나,
그 대신에 정도전 등과 어깨를 겨룰 만한 거물급으로 조정과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더 이상 이성계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은 사라졌고,
예정된 수순대로 공양왕은 폐위되었으며,
이성계는 만조백관의 주청을 받고, 몇 번을 사양하는 척하다가 드디어 보위에 오르게 되니(56세),
정도전(50세)과 결의를 다진 때로부터 9년이 지난 후였다.

* 조선왕조 개창의 의미
- 정도전의 신흥 사대부와 이성계의 무력(사병 가별초)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 이성계(고려의 공식적 마지막 왕)

계속......
(자료제공 : 칠곡 노무사 신재길 977-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