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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미로 읽는 조선왕조 - 5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0.22
번호 | 540
조회 | 93
조선왕조 - 5

* 이인임의 죽음 그리고 최영, 이성계 시대의 개막

공민왕 살해 사건의 처리를 통해 더욱 막강한 권력을 움켜쥔 이인임은
공민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결정하는 조정 중신 회의에서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그 어린애를 왕으로 내세우니 이 사람이 바로 우왕이다.

이인임은 어린 우왕의 후견인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이즈음 중국에는 주원장이 明 나라를 세워 중국의 실권자가 되었는데,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신진 사대부(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 와
북쪽으로 패주 한 몽고, 즉 원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권문세족(이인임)이 충돌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인임과 맞서던 정도전 등이 귀양을 가게 된다.

얼마 후, 정몽주 등은 모두 풀려나 조정에 복귀하는데,
이인임은 정도전 만은 개경에 들어올 수 없다며 정치활동 금지 조치를 내린다.

정세가 이렇게 돌아가자 정도전은 귀양지에서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본 결과,
역성혁명 밖에 길이 없다고 보고, 이성계를 만나 의기투합을 하게 되니,
이때 이성계의 나이는 47세, 정도전은 41세였다.

한편, 이인임의 후견 아래 차츰 커가던 우왕은 여러 가지 해괴한 행태를 보이면서도
실권을 가진 진짜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권세욕이 강한 이인임보다는 사심 없고 강직해 보이는 최영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우왕은 드디어 최영에게 이인임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내리는데,
최영은 거사의 성공을 위해 이성계를 끌어들였으며,
최영과 이성계는 힘을 합쳐 이인임과 그 일파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최영과 이성계의 투톱 세상이 열리게 된다.

※ 이인임과 우왕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
이인임은 공민왕이 죽자, 바로 최만생, 홍륜 등을 체포하여 대역 죄로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는데,
여기서 이인임은 공민왕의 아들 '우'를 왕으로 올려세우니 그가 바로 우왕이다.

사실 우왕의 탄생에는 미스터리한 점이 있다.
우왕은 공민왕의 장남이지만 신돈의 여종이었던 반야의 소생으로 1365년에 태어났는데
우왕은 어렸을 적 궁이 아닌 신돈의 집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 사연은 공민왕이 끔찍이 사랑했던 노국공주가 죽고 나자
자식이 없는 공민왕에게 신돈이 노국공주와 닮은 자신의 여종 반야를 바치며
공민왕에게 아이를 얻게 하기를 권했다.
그렇게 되어 태어난 아이가 바로 우왕인 것이다.

이후 우왕을 낳은 반야는 1년 동안 궁이 아닌 신돈의 집에서 기거하였고
1371년 신돈이 역모죄로 유배되자 공민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 '우'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당시 侍中으로 있던 이인임에게만
"신돈의 집에 있던 미모의 여인에게서 아들을 낳은 것이라"라는 말을 전했고
이후 어린 우왕은 태후 홍 씨에게 맡겨져 궁궐의 교육을 배우며 자라나게 된다.


3년 후, 공민왕은 자신의 아들 우가 신돈이 상납한 반야의 소생이 아니라
이미 죽은 궁인 한 씨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궁인 한 씨 집안에 벼슬을 내리며
궐내의 많은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였다.

이후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왕위에 오른지 2년,
진짜 어머니였던 반야가 우왕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이인임에게 살해당해 임진강에 버려지고 만다.
(정치와 권력의 냉혹함과 비정함은 예나 지금이나?)

공민왕과 이인임이 우왕의 친모가 궁인 한 씨라고 강변한 이유는
반야를 우왕의 생모라고 할 경우,
공민왕의 핏줄이 아닌 신돈의 핏줄이라는 말들이 떠돌 것이고
후에 큰 문젯거리가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에 성공한 이성계와 정몽주 등에 의해
우왕은 신돈의 씨로 낙인찍혀 강제 폐위되고 만다.
물론 우왕이 신돈의 아들일 수도 있고 공민왕의 자식일 수도 있지만 ?
계속....

자료제공 : 칠곡 공인노무사 신재길. (blog.naver,com/tlsworlf01)-재미로 읽는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