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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

이름 | 신재길
작성일 | 2019.10.10
번호 | 536
조회 | 151
오늘의 서울거리!
광화문 서초동은 아우성이다
작금의 사태에서 얼룩진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본다
- 무엇을 할 것인가?
- 잘못을 뉘우치자 그리고 삶을 고민하자

조선왕조를 83편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조선왕조 1

(태조실록)
고려 후기 1250년경,
전라도 전주에서 '이안사'라는 젊은이가
고을의 관기를 건드린 죄로 고을 별감으로부터 처벌을 받게 되자..
이안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삼척으로 피신, 그곳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전주의 수령이 삼척으로 발령받아오는 바람에 다시 식솔들을 이끌고 멀리
도피한 곳이 함경도의 동북면이었다
이때 이안사를 따라 나선 이가 170여 가구에 달했다고 한다.

이안사는 상당한 리더십을 가진 자로 동북면에 정착해 1천여 호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때 세계를 제패한 몽골이 이안사에게 투항하여 복속될 것을 요구하자,
이안사는 고려의 상태를 살펴보고 고심 끝에 몽골에 투항하여 元 제국의 관리가 되었다.
이안사는 이때부터 더욱 세력을 넓혀가며 동북면의 실력자로 크게 성장하였으니,
이 사람이 바로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이로부터 100여 년 후,
대제국 몽골이 쇠약해지며 대륙 전역에 주원장 등이 일으킨 亂의 불길이 크게 타오르자
동북면의 실력자인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자춘은 元 나라가 머지않아 망하리라 판단하고 몽고제국의 관리를 그만두고
고려의 공민왕에게 스스로 복속하여 고려 국적을 회복하였고,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고려군이 쇠약해지는 몽고군을 칠 때 동북면에서 내응할 것을 명하였는데, 결국 공민왕의 동북면 회복 작전에 이자춘은 큰 공을 세워 동북면의 유일한 패권자가 되기까지 이르게 된다.

* 이안사 도피 경위에 대한 추가 이야기
# 이씨 가문의 본향은 전라도 전주이며
전주 호족 출신으로 몽골에 대한 대항마로 개인 가신단과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20대 초반 시절 이안사와 전주 고을 별감이 한 여자를 두고 크게 싸우게 되는데
별감은 상사인 고을 현감에게 직소하고..
현감은 안렴사(현재의 도지사급)에게 이안사의 처벌을 요청하였으나
안렴사는 이안사의 사병 규모가 상당함을 알고 조정에 병력 파견을 요청한다.
그러나 고려 말 혼란기의 조정은 미적거리고,
그러한 사태를 파악한 이안사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신단을 이끌고
강원도 삼척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때 전주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삼척으로 따라간 가구가 무려 170,
이 170가(家)는 차후 이씨 가문이 사방 팔방으로 쫓기는 와중에도
끝까지 함께하는 충성심이 깊은 가신단이었다고 한다.

이안사 집단은 삼척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겨우 세력이 자리를 잡을 때,
새로운 안렴사(오늘날의 도지사급)가 삼척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그 안렴사가 바로 전주에서 여자 문제로 치고받고 싸웠던 바로 그 별감의 상사였으니..
이안사는 안렴사가 관군을 동원하여 자신을 토벌하려고 하면 대적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북방의 의주로 다시 이주하게 된다.
이때 그를 따라온 170가(家) 역시 모든 삶의 기반을 버리고 이안사와 함께 의주로
동행한다.
이안사는 조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의주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는데,
기병 양성을 필두로 사병을 강화한다.
고려 조정은 이안사에 대한 사실상의 재제를 포기하고
그를 포용하는 제스처로 몽골 제국을 방어하라고 '의주 병마사'에 임명한다. (말뿐인 직책)당시 이안사의 세력(戰力)은 주변에서 꽤 높게 평가받고 있었던 듯하다.
그를 눈여겨보던 몽골제국의 장군 산길(散吉)이 이안사에게 귀순할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종용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한다.
세력을 불렸다고는 하나 대제국 몽골과 붙으면 필패는 당연지사라..
고민하던 이안사는 결국 몽골제국에 귀순하고 정치적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이안사는 자신의 집안 여자를 몽골의 장군 散吉과 혼인 시킴으로써 정략결혼을 통하여.
인맥을 만든다.
의주에 눌러있으면 고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더욱 북방으로 이동하여 개원로 남경 알동(현재 吉林省 훈춘시)에 정착하게 된다.

계속.

(출처 : blog.naver.com/tlsworlf01)